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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은 잘 써질 때보다,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 진짜 글이 시작된다

by 리안애미 2026. 1. 31.

 

챗GPT, 제미나이 등의 ai 등장으로 우리는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. 그 반면 ai가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. ai를 빌리지 않고 글을 써보려고 하지만 도저히 쓸 수가 없게 되고 우리는 다시 챗GPT를 켭니다.

하지만 이 상태에서 조금만 더 노력을 하면 진짜 내 글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.

글은 잘 써질 때보다,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 진짜 글이 시작된다
글은 잘 써질 때보다,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 진짜 글이 시작된다

 

글이 멈췄다는 감각은 실패가 아니라 신호

글이 잘 써질 때는 대부분 생각이 빠르게 문장으로 옮겨지는 상태였습니다.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이 큰 저항 없이 손끝으로 흘러나왔고, 문장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. 이때는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보다 이미 준비된 말을 받아 적고 있다는 감각에 가까웠습니다. 그래서 흔히 이 상태를 ‘글이 잘 써진다’고 표현합니다.

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장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구간에 도달했습니다. 키보드 앞에 앉아 있는데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, 억지로 쓰려 하면 문장이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이미 여러 번 써본 말처럼 느껴졌습니다. 이때 많은 사람들은 글이 안 써진다고 말하며 원인을 컨디션이나 재능의 문제로 돌립니다. 저 역시 그랬습니다.

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. 글이 멈춘 순간은 실패가 아니라 신호였다는 사실입니다. 이미 알고 있는 생각, 이미 정리된 감정, 이미 안전한 문장들이 바닥났다는 신호였습니다. 더 이상 익숙한 말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상태였습니다. 이 지점부터는 ‘쓰는 능력’이 아니라 ‘버티는 태도’가 요구되었습니다.

글이 멈췄을 때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면, 이전과는 다른 질문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. 왜 이 문장은 쓰기 싫은지, 왜 이 이야기를 피하고 싶은지, 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. 이 질문들은 즉각적인 문장을 주지는 않았지만, 글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. 바로 이 순간부터 진짜 글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.

 

이상 써지지 않을 때, 글은 기술에서 태도로 바뀐다.

글이 잘 써질 때는 기술이 전면에 나옵니다. 문장을 어떻게 구성할지, 리듬을 어떻게 살릴지,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구조는 무엇인지에 집중하게 됩니다. 이 과정은 분명 중요하고 필요합니다. 그러나 기술만으로 쓸 수 있는 글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.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글이 더 깊어지지 않았습니다.

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는 순간에 들어서면, 기술은 더 이상 해결책이 되지 못했습니다. 문장을 다듬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, 다듬을 문장 자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 이때 글쓰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전환되었습니다. 무엇을 잘 쓸 수 있는지가 아니라, 무엇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.

이 시점에서 많은 창작자들이 멈춥니다.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끼거나, 지금은 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. 하지만 글은 준비가 끝났을 때보다 준비가 무너질 때 더 솔직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.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,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생각,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를 견디는 태도가 필요했습니다.

더 이상 써지지 않는 상태를 견디다 보면 문장은 이전보다 느리게 나옵니다. 대신 그 문장은 이전보다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. 다듬기 전부터 이미 진심에 가까운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. 이때부터 글은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니라,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록이 됩니다.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였습니다.

 

끝까지 남는 글은 늘 불편한 구간에서 시작된다.

돌이켜보면 오래 기억에 남는 글들은 대부분 편안하게 써진 글이 아니었습니다. 쓰는 동안 여러 번 멈췄고, 이걸 굳이 써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글들이었습니다. 완성하고 나서도 만족스럽기보다는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던 글들이었습니다. 그러나 그런 글일수록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.

글이 잘 써질 때는 자신감이 생깁니다. 반면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는 의심이 시작됩니다. 이 의심은 글을 흔들지만, 동시에 글을 가볍게 소비되지 않게 만듭니다. 쉽게 쓴 글은 쉽게 읽히지만, 쉽게 잊힙니다. 반대로 어렵게 써진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구합니다. 그래서 남습니다.

더 이상 써지지 않는 구간을 통과한 글에는 작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. 잘 정리된 생각이 아니라,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문장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. 독자는 그 흔적을 읽습니다. 그래서 어떤 글은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진짜처럼 느껴집니다. 그것은 글이 ‘성공’해서가 아니라, 글이 ‘버텼기’ 때문입니다.

결국 글이 잘 써질 때는 글을 쓰는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. 그러나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는 글 자체가 중심이 됩니다. 내가 쓰고 싶은 말이 아니라,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될 말이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. 이 질문 앞에 오래 머문 글만이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습니다. 그래서 진짜 글은 늘, 더 이상 써지지 않는 순간에서 시작됩니다.